[뉴스] [경희의 유산]⑳ “인간에겐 사랑을, 인류에겐 평화를”
경희의 유산⑳ 『평화의 전당 』
# ‘경희의 유산’ 2차 연재를 시작하며-경희기록관은 2026년 가을 학기부터 1년간 ‘경희의 유산’ 2차 연재를 이어간다. 이번 연재에서는 캠퍼스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건축물, 장소를 중심으로, 경희인의 삶과 추억, 지금도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역사의 흔적을 소개한다.
9월 21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평화의 날이다. 매년 이날이 되면, 뉴욕 유엔 본부에선 ‘평화의 종’을 울리는 타종식이 열리고, 종소리에 호응하듯 전 세계 각지에서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다양한 모임과 행사가 이어진다. 1981년 11월 제36차 유엔총회를 통해 세계평화의 날이 제정된 이후, 경희도 이날을 기념하는 국제회의(2006년부터 ‘Peace BAR Festival(약칭 PBF)’로 확대)를 매년 개최해 오고 있다. 올해로 벌써 45회째다.
그런데 이날을 만들자고 처음 제안한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경희학원 설립자 미원(美源) 조영식 박사다. 경희가 세계평화의 날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단지 우리 대학이 제정에 기여했기 때문은 아니다. 설립 이래 우리 대학은 학문적 탁월성과 함께 인류 사회에 공헌하는 실천적 노력을 중시해 왔다. 그래서 경희의 교가도 ‘온오한 학술 연구, 변전하는 세계의 진리 탐구’와 함께 ‘인류 위해 일하고, 평화 위해 싸우자’고 호소한다. 학문과 평화는 우리 대학이 추구하는 가치의 두 축인 것이다.
평화를 중시하는 경희의 전통은 캠퍼스 곳곳에 구체적인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평화의 전당이다. 서울캠퍼스 상징과도 같은 이 건물은 1999년 개교 50주년에 맞춰 문을 열었다. 총 4,500석(현재 4,250석)의 객석을 갖춘 평화의 전당은 개관 당시 아시아 최대 문화예술공간으로 주목받았다. 졸업식, 입학식, PBF 같은 교내 행사는 물론 외부 기관이 주최하는 예술 공연, 시상식도 자주 열린다. 드라마나 영화에도 종종 등장해서, 캠퍼스를 방문하는 일반 시민, 외국인 관광객들이 반드시 사진에 담고 싶어 하는 인기 장소이기도 하다.
화강석으로 마무리된 중세 고딕양식의 건물 외관은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성 미셸 성당을 모델로 했다. 건물 곳곳에 경희의 이상과 한국의 전통미를 상징하는 요소가 녹아들어 있다. 평화의 전당 건립의 역사는 19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교생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큰 강당을 짓자는 구상이 이때 시작됐다. 1978년 5월 설계를 완성했고, 1981년 8월 건축 허가를 받아 공사가 시작됐다. 당시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도 전례가 없는 대강당을 짓는 공사였다. 난관이 없을 리가 없다. 그런데 가장 큰 장애물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거졌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1983년 어느 날, 당시 우리 대학 바로 옆 이문동에 소재하고 있던 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짓고 있는 건물 꼭대기 24.8m 탑의 높이를 절반으로 낮출 것을 요구했다. 강당이 완성되면 안기부에 보안상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 후에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계속 공사를 어렵게 했다. ‘풍수지리상 국가 운명에 문제가 생긴다’, ‘북한군이 쳐들어왔을 때 건물 옥탑이 공격의 거점이 된다’ 등등.
1980년대가 어떤 시대인가. 군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엄혹한 시절이다. 결국 그들의 요구에 따라 이미 완성된 옥탑 석조물 일부는 철거됐고, 1986년부터 공사는 중단됐다. 다행히 1995년에 안기부가 내곡동으로 이전하면서 공사가 재개됐지만, 근 10년간 평화의 전당은 짓다 만 어정쩡한 모습으로 권위주의 시대 굴곡을 상징하듯 캠퍼스 한켠에 묵묵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 학생들 사이에서 이 짓다 만 대강당의 이름은 비놀리아관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TV 광고 중에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 알뜰한 비누라는 점을 강조한 “아직도 그대로네!”라는 카피가 있었다. 그 비누의 이름이 비놀리아였다. 10년 가까이 짓다 만 모습 그대로인 건물. 오랜만에 모교를 찾아 언덕 위를 바라본 졸업생들 입에서 “아직도 그대로네!”라는 한탄이 나올 법도 하지 않은가.
올해로 평화의 전당이 완공된 지 27년이 된다. 로비에는 설립자의 휘호로 이런 문구가 걸려있다. “인간에겐 사랑을, 인류에겐 평화를.” 학문과 평화를 사랑하는 경희의 전통이 50년 후, 100년 후에도 아직도 그대로, 여전히 그대로 캠퍼스에 살아 숨쉬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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