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경희의 유산] ④등용문, 그 특별함을 찾아서
연재-경희의 유산 ④『등용문, 그 특별함을 찾아서』
# 9월부터 경희기록관은 우리신문과 함께 ‘경희 유산을 찾아서’를 연재한다. 서울, 국제, 광릉 캠퍼스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유산과 자연 유산은 물론 경희기록관이 소장하고 있는 우리 대학의 역사적 기록물, 경희만의 고유한 정신 유산들을 중심으로, 그들에 관한 역사적 사실,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 숨겨진 흥미로운 에피소드 등을 글과 사진으로 소개한다. 1차로 내년 여름까지 연재를 진행하고, 1년간의 연재 결과를 바탕으로 내용과 형식을 보완해 2차 연재를 진행할 계획이다.
서울캠퍼스 등용문을 드나들며 무엇인가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 있는가?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치는 문이지만, 정작 등용문을 눈여겨보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등용문은 여러모로 특별하다.
첫째, 역사다. 등용문은 1955년 5월 10일에 완공되었다. 1955년은 우리 대학이 종합대학으로 승격된 해인 까닭에 등용문 머릿돌에는 ‘종합대학승격’이라는 문구가 한자로 씌어 있다. 올해로 건립 70주년을 맞은 등용문은 현존하는 국내 대학 교문 중에서 그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다. 우리보다 역사가 앞선 대학도 캠퍼스 리모델링 과정에서 교문의 위치를 바꾸거나 새로 세우면서, 설립 연도는 대개 등용문보다 뒤처진다.
둘째, 형태다. 다른 대학 교문과 비교하면 등용문은 매우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많은 대학 교문은 기둥 두 개를 입구 양쪽에 세우고, 그 사이에 철문을 다는 식이다. 아예 문을 두지 않고 입구에 대학 이름으로 조형물만 세운 경우도 많다. 반면, 등용문은 전통 기법으로 돌을 쌓아 올린 구조를 하고 있으며, 지붕이 있는 아치형 문이 있고, 양 기둥의 머리는 왕관 모양을 하고 있다. 성문(城門) 혹은 유럽의 개선문처럼 하나의 완결된 건축물인 셈이다.
셋째, 이름이다. 서울캠퍼스 교문의 이름은 ‘등용문(登龍門)’이다. 잉어가 용으로 승천한다는 고사에서 따온 이름으로, 경희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큰 인재로 성장하라는 격려와 염원을 담아 붙인 것이다. 그런데, 대학 교문에 의미를 담아 이름을 붙인 경우는 흔치 않으며, 있더라도 나중에 명명된 경우가 대다수다. 등용문처럼 건축 당시부터 의미를 담아 설계하고 명칭까지 붙인 사례는 매우 드물다.
그렇다면 우리 대학이 교문의 형태와 이름을 정할 때 남다른 접근을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교문의 역할과 의미를 남다르게 보았기 때문이다.
1955년 당시 등용문 건축은 학교의 형편과 어울리지 않는 대공사였다고 한다. 만약 문의 기능만을 생각했다면 간소하게 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형편이 나아지기를 기다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대학은 교문이 단지 대학의 출입구 역할만 한다고 보지 않았다. 매일 등용문을 드나드는 학생들에게 경희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고, 더 큰 꿈과 의지를 북돋게 하기 위해서는 여느 건물들처럼 정성을 들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70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단 한 번의 변화도 없이 그 위치, 형태, 이름을 유지하는 그 특별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현재의 대학 교문이 세워진 연도는 다음과 같다: 고려대 1971년, 한양대 1971년, 부산대 1976년, 서울대 1978년, 건국대 1986년, 이화여대 2006년, 서울시립대 2012년. (사진=경희기록관 제공)

▲등용문 동편의 작은 문은 1999년 차도와 보도를 분리하면서 새로 만든 것이다. (사진=경희기록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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