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경희의 유산] ⑱세계적인 대학 건설의 첫 항해 ‘4년제 종합대학 승격’
경희의 유산⑱ 『종합대학 승격 기념 표석』
# 작년 9월부터 경희기록관은 우리신문과 함께 ‘경희 유산을 찾아서’를 연재한다. 서울, 국제, 광릉 캠퍼스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유산과 자연 유산은 물론 경희기록관이 소장하고 있는 우리 대학의 역사적 기록물, 경희만의 고유한 정신 유산들을 중심으로, 그들에 관한 역사적 사실,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 숨겨진 흥미로운 에피소드 등을 글과 사진으로 소개한다. 1차로 여름까지 연재를 진행하고, 1년간의 연재 결과를 바탕으로 내용과 형식을 보완해 2차 연재를 진행할 계획이다.
![]()
▲정문 우측 하단부에 마련된 ‘종합대학 승격 기념 표석’ (1955년 5월 설치)
우리 대학은 1955년 2월 28일자로 꿈에 그리던 4년제 종합대학으로 승격했다. 휴전협정 이후 피란지 부산에서 서울로 이전(1954년 3월 24일)한 지 불과 11개월 만에 이룩한 쾌거였다. 종합대학 승격을 영원히 기억해 전하기 위해 당시 건설 중이던 정문(1955년 2월 17일 착공) 우측 기단부에 기념 표석을 설치했다. 표석 전면에는 ‘종합대학 승격 기념문’, 측면에는 ‘단기 4288년 5월 10일 총장 조영식’이라 새겨 놓았다. 이 기념 표석은 그동안 우리 대학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던 ‘종합대학’과 ‘총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최초의 석각 기록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
이처럼 피란지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종합대학 승격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서울 이전의 명분으로 삼았던 ‘세계적인 대학 건설’을 향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실행 방안이었기 때문이다. 서울 이전 직후, 1954년 5월 20일 학장 취임사를 통해 설립자 조영식 박사는 ‘세계적인 대학 건설’의 미래 비전을 천명함과 동시에 이를 실행하기 위한 첫 번째 미션, 즉 4년제 종합대학으로 나아가기 위한 제반 사항을 점검하고 독려하기 시작했다. 약 7개월간의 준비를 거쳐 1954년 12월 28일자로 신청서를 제출하게 되었다. 당시 인가 문제는 경기도청 강당에서 열린 중앙교육위원회에서 심의되었는데, 거의 전원 찬성과 지지를 얻어 가결되었다.
당시 종합대학 편제를 보면, 대학원의 경우 석사학위 과정만 허가를 받았는데, 법률학과, 정치학과, 국어국문학과, 영어영문학과 각각 12명씩 전체 48명이었다. 학부 단과대학으로는 법과대학 법률학과,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 경제학과, 문리과대학 국문학과, 영문학과, 사학과, 생물학과, 체육대학 체육학과, 체육음악과 등 4개 단과대학 9개 학과 전체 재학생 수 1,520명이었다. 부설기관으로 부속도서관, 부속박물관, 부속식물원, 부속녹음관을 설치하기로 했고, 교지는 130,000평 이상, 교사는 5,220평 이상, 체육장은 11,000평 이상을 1959년 3월까지 완성해야 한다는 단서 조항과 함께 4년제 종합대학 설립을 인가받았다.

▲1955년 승격 당시 4년제 종합대학 편제표
이 기념 표석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정문에 새겨진 ‘등용문’ 글자를 탁본하기로 한 2013년 2월 어느 주말이었다. 탁본 당일 ‘등용문’ 글자를 포함한 정문 전체를 세밀하게 조사하던 중, 정문 기단석에 ‘종합대학 승격 기념문’이라고 새겨진 표석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지금도 당시를 떠올려 보면 생각지도 못한 발견과 환희의 순간이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1955년 이래로 이 기념 표석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 왔건만, 우리들의 기억 저편으로 서서히 사라져 갔다는 사실에서 씁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더할 뿐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이 기념 표석은 정문 기단석 정도로 사용되고 있지만, 이것이 ‘세계적인 대학으로 나아가는 첫 항해’의 순간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잊혀지지 않기를 기원해 본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1
- 2
- 3
- 4
-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