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내가 다루는 우주는 ‘우리 우주’가 아니다” 수학으로 우주를 묻는 사람, 조민규
공부하는 사람들③ 물리학전공
#학부 4학년을 마친 학생들은 취업과 대학원 진학의 갈래 앞에 선다. 이중 대학원 진학은 ‘연구자의 삶’을 택하는 것이다. 이들이 한 명의 연구자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앎’은 개인의 성취인 동시에 사회 공공재가 된다. 이번 학기 대학주보는 ‘공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세 번째 주인공은 ‘고차스핀중력’을 연구하고 있는 물리학과 고에너지이론 전공 조민규(박사 3기) 씨다.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 조민규 씨는 낮 12시에 연구실로 출근해 새벽 2시쯤 귀가하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생물학자 에른스트 마이어의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할 때까지만 과학자인 사람은 없다”는 말을 인용하며, “과학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선택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진=이지수 기자)
‘가능한 모든 우주’ 상상
자연의 수학적 원리에 흥미
우리가 사는 우주는 4차원 시공간 위에서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다. 반면 조민규 씨의 연구 주제인 ‘고차스핀중력’은 수축하는 우주를 가정하고,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스핀(물리량) 3 이상의 입자를 다룬다. 조 씨는 “우주의 근원 구조에서 우리가 사는 세계로 이어지는 과정에는 수많은 우연이 작용한다”며 “왜 꼭 지금의 우주만 가능한지 질문해보는 것”이라고 연구의 근간을 설명했다. 이어 “수학적 구조를 이해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이다”며 “그래서 내가 주로 다루는 우주는 ‘우리 우주’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같은 이론물리학 안에서도 우주의 기원이나 블랙홀 등에 관심을 두는 연구자들과 달리, 조 씨는 물리 현상의 기저에 깔린 수학적 구조에 더 큰 관심을 둔다. 그는 “예를 들어 블랙홀 근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내부에 무엇이 있는지는 직접 관측할 수 없기에 과학자는 우리에게 설명해줄 수 없다. 하지만 수학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조 씨의 연구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수학적으로 가능한 조건을 설정함으로써, 현재 우주의 성질을 상대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그의 연구분야는 당장 눈앞의 세계를 설명하거나 실용적인 결과로 이어지진 않는다. 조 씨는 “내 연구가 뛰어난 성과를 낸다고 해서 세상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쓸모는 없을지 몰라도 가장 인간다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른 동물들은 먹고살기 위해 급급한 일들을 하는 반면 고등 동물로 갈수록 생존과 무관한 일에도 몰두하기 시작한다”며 ‘연구’라는 행위에 의미를 부여했다.
어떤 즐거움은
오랜 훈련으로만 얻을 수 있어
대학원의 길을 자연스럽게 택했을 것 같은 조 씨에게도 고민의 시간은 있었다. 본격적으로 전공을 공부하게 되는 학부 2학년 시기, 물리학과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학업 고민 때문이었다. 특히 고전역학과 수리물리를 배우며 “나는 물리에 재능이 없구나. 그럼 난 앞으로 뭘 해야 하지?”라는 복잡한 심경으로 도망치듯 군대로 향했다.
그런데 심심할 때마다 펼쳐보던 교범 속에서 어느새 탄도 궤적을 계산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쩌면 나는 이거 말고 할 짓이 없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깨달음 이후, 조 씨는 이등병 시절부터 전역할 때까지 매일 저녁과 야간연등 시간마다 물리학 공부를 이어갔다. 교양수업 ‘인간의 가치탐색’을 계기로 관심이 있던 철학 공부도 병행했고, 나중에는 복수전공으로까지 이어졌다.
공부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화두다. 조 씨는 “멀리서 본 우리 인생은 그저 태어나 죽어가는 과정이기에 어쩌면 무채색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과정 속에서 느끼는 여러 즐거움들이 삶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만든다”고 말했다. 예술적 감각을 기르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조 씨에게 물리학과 수학은 많은 노력과 시간을 요구하는 또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이다. 그의 말처럼, 어떤 즐거움은 오랜 훈련을 통해서만 누릴 수 있다.
학문의 시작은
세계에 대한 경탄에서
이론물리학 연구는 실험 분야와 달리 산업으로의 직접적인 연결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연구자들에게는 불안정한 미래를 떠올리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연구자들이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에도 ‘박사후연구원’ 신분으로 2년 단위 계약을 반복하며 세계 각지의 연구기관을 옮겨 다닌다. 조 씨는 “물리학과에는 두 부류가 있는데, 이론물리학자와 이론물리학자가 되고 싶었던 물리학자”라며 “상대성 이론을 떠올리며 학부에 입학한 학생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런 현실의 벽 앞에서 방향을 바꾸는 경우도 많이 봤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연구 과정에서 가장 자주 마주하는 감정은 ‘즐거움’이다. 조 씨는 플라톤의 말을 빌려와 “학문의 시작은 세계에 대한 경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연에 대한 경탄에서 출발해 깊이 파고들다 보니 알게 된 독특한 자연의 구조를 인간의 언어로 풀어내는 과정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또 우주를 연구하는 일을 두고는 “가장 인간다운 일이면서 동시에 인간을 겸손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자연의 구조 앞에서 인간의 지식과 지혜가 얼마나 작은지 계속 마주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박사 3기에 접어든 지금, 조 씨의 연구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는 또 다른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다. 조 씨는 “논문은 계속 쓸 것”이라며 “그래야 다음 연구 기회가 생기고, 계속 연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다. 연구에는 끝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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