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캠퍼스를 걸으며 초록을 읽다... 자연사박물관 생태 탐방 현장
# 자연사박물관이 진행한 ‘캠퍼스 생태 탐방: 함께 걷고 기록하다’에 참여하기 위해 7명의 학생이 박물관 앞에 모였다. 참가자들은 한 시간 남짓 캠퍼스를 걸으며 식물을 관찰하고, 일부를 채집해 표본으로 남겼다. 우리신문은 지난 21일, 평범한 산책로의 초록이 생태 기록으로 바뀌는 과정을 따라갔다.
꽃 없는 나무들의 비밀
향나무와 은행나무의 생태
오전 10시, 관찰용 돋보기인 루페를 챙긴 학생들이 자연사박물관 앞으로 모였다. 탐방경로는 자연사박물관에서 스페이스21을 지나 중앙도서관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였다.
첫 관찰 대상은 박물관 앞 향나무였다. 자연사박물관 안범철 차장이 향나무를 가리키며 “이 나무의 꽃을 본 적 있는 사람?”이라고 물었다. 학생들 사이에 어색한 웃음이 번졌지만 선뜻 답하는 학생은 없었다. 향나무는 겉씨식물이라 우리가 흔히 아는 꽃이 피지 않는다. 이어 안 연구사는 향나무 가지를 태우면 특유의 향이 나 예로부터 제사 때 향으로 쓰였다고 설명하며 직접 가지에 불을 붙였다.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오르자 학생들은 향나무 주위로 모여들어 연기를 들이마셨다.
▲안 차장이 은행나무 앞에서 화석 식물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캠퍼스에 서 있는 은행나무는 대부분 사람이 심어 놓은 조경수다. (사진=오채원 기자)
몇 걸음 옮기자 은행나무가 나타났다. 안 차장은 “은행나무는 화석으로 확인된 7종 가운데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종”이라며 “과거 대형 초식동물이 열매를 먹고 이동하며 씨앗을 퍼뜨렸으나 그 매개체가 사라지면서 자생 개체군도 자취를 감췄다”고 설명했다. 지금 캠퍼스에 서 있는 은행나무 대부분은 사람이 심은 것이다.
루페로 들여다본 작은 꽃과 풀
기후변화의 증거인 ‘계요등’
이어서 도서관 앞 통로로 자리를 옮기자 낯선 냄새를 풍기는 덩굴 식물이 눈에 들어왔다. 안 차장이 잎을 하나씩 뜯어 건네자, 학생들은 냄새를 맡는 데 집중했다.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향긋해요”라는 반응이 나오는가 하면, 바로 옆에서는 “냄새가 안 나요”라며 고개를 갸웃했다. “향이 너무 진하다”며 얼굴을 찡그리는 학생도 있었다.
이 식물의 이름은 ‘계요등’으로, 닭 오줌 냄새가 나는 덩굴이라는 뜻에서 ‘개오줌덩굴’이라고도 불린다. 안 차장은 “제 학부생 시절만 해도 우리학교에는 이 식물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몇 년 전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100년 전은 아니잖아요.” 농담 섞인 말에 학생들 사이에서 웃음이 나왔다. 원래 남부 지방에서만 자라던 것이 온도 상승과 기후변화로 서식지를 북쪽까지 넓히면서 지금은 서울캠에서도 흔히 관찰된다. 우리 캠퍼스에서 기후변화의 증거를 대라고 한다면, 이 식물 하나로도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함부로 먹지 마세요
산책로가 준 경고
산책로로 접어들며 이야기는 미국자리공과 떼죽나무로 이어졌다. 안 차장은 옛날 할머니들이 미국자리공 뿌리를 된장국에 넣어 진통제로 썼다는 민간요법을 소개하며, 잘못 쓰면 치명적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떼죽나무 앞에서는 열매와 잎을 짓이겨 물에 풀면 물고기가 마취돼 떠오른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나무에 매달린 열매를 조심스레 건네받아 이리저리 살펴봤다. 안 차장은 청량산에서 이 나무 씨앗을 채집하다 등산객이 잘못 먹어 마비 증상을 보였던 일화를 들려주며 “야생 식물을 함부로 먹거나 만지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이 말에 열매를 손에 쥐고 있던 몇몇 학생은 조심스레 열매를 내려놓기도 했다.
▲학생들이 떼죽나무 열매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오채원 기자)
“영원한 기록의 한 장면에 함께하다”
스쳐 지나던 초록을 기억하는 법
이번 탐방은 ‘세 도시의 캠퍼스, 초록을 읽다’의 일환이다. 이는 서울·대전·제주 세 지역에서 우리학교를 비롯한 충남대, 제주대의 캠퍼스 식생을 나란히 조사·기록하는 프로젝트로, 이날 채집된 식물은 이후 표본으로 제작돼 10월부터 자연사박물관 특별전시실과 충남대와 제주대의 전시실에서도 관람객을 만날 예정이다.
안 차장은 탐방 내내 “우리 학교에 이런 식물이 300종 정도 있는데, 그냥 ‘아, 초록색이네, 나무네’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너무 많다”며 “표본으로 이름과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매일 지나는 길 위의 식물들은 그렇게 존재조차 잊힌다”고 말했다. 이날 걸었던 길 위에서만도 닭의장풀, 백일홍, 강아지풀, 소나무, 단풍나무 등 스무 종 넘는 식물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이날 탐방에 참여한 박시영(스마트팜과학 2024) 씨는 “그냥 지나쳤던 풀들을 새로 알게 된 느낌”이라며 자신이 만든 표본이 훗날 전시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영원히 남는 기록물의 한 장면에 함께했다는 게 의미 있었다”고 말했다.
최예지(조소 2022) 씨는 “그냥 지나치던 식물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며 “닭의장풀은 정말 흔한 잡초인데, 오늘 들은 이야기들을 떠올리면 그냥 지나치지 않게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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