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빈곤이 만든 고립, 도쿄에서 본 청년의 현실 ‘지원금’보다 중요한 것, 끊어진 관계 잇는 ‘연결’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와 일본의 메이지가쿠인대·릿교대, 반빈곤네트워크가 공동 주최한 ‘한일 청년 반빈곤 교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한국과 일본의 청년들은 4박 5일간 도쿄와 사이타마현의 빈곤 현장을 방문해 양국 청년 빈곤의 실태를 비교하고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우리신문은 총 3회에 걸쳐 그 여정을 전한다. 2~3회는 추후 온라인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 순서에서는 청년 빈곤의 기저에 놓인 ‘고립과 멘탈 헬스’에 주목했다.
▲한일 청년 반빈곤 교류 프로그램에서 양국 청년 빈곤 실태를 비교하고 연대 가능성을 모색했다. (사진=윤테레사 씨 제공)
기다리지 않고 문을 두드린다
‘아스포트’의 아웃리치
사이타마현의 학습 지원 단체 ‘아스포트(Asuport)’ 사무실 한편, 철제 책장에는 손때 묻은 두꺼운 활동 일지가 연도별로 빼곡했다. 기록집에 담긴 것은 교실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수동적 지원’이 아니었다. 이들은 낡은 아파트 단지를 돌며 굳게 닫힌 가정의 문을 직접 두드리고, 인기척 없는 방 안에 숨은 아이들을 찾아가는 ‘아웃리치’ 활동을 수년째 지속해오고 있었다.
현장에서 확인한 빈곤 가정 아이들의 학업 중단 원인은 단순한 사교육비 부족이 아니었다. “주말에 어디 놀러 갔어?”라는 친구들의 평범한 질문에 입을 다물게 되는 문화 자본의 결핍은 또래 집단 내에서의 소외감을 불렀고, 이는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학습된 무기력으로 이어졌다. 반복된 좌절은 깊은 열등감을 심어주었고, 친구들 틈에서 자꾸만 작아지는 자신을 견딜 수 없었던 아이들은 결국 캄캄한 방 안으로 숨어버리는 ‘자발적 고립’을 택했다. 세상과 담을 쌓은 그들에게 학업은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했다.
지금의 빈곤은 고립을 낳고, 고립은 학업 포기로 이어지며, 이는 결국 미래에도 빈곤이 예상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문 너머로 건네는 아스포트의 방문 인사는 단순한 학습 지도가 아니다. 고립된 섬에 갇힌 아이에게 “혼자가 아니다”라는 신호를 보내는 구조 요청이다. 이는 빈곤 대책이 단순한 재정 지원을 넘어, 가난이 쌓은 고립의 벽을 허물고 아이들을 다시 사회로 연결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가방면’ 18년
간호사를 꿈꾸는 A양의 선택
빈곤과 고립은 제도적 모순 위에서도 자란다. 스리랑카와 우간다 출신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란 18세 A양을 만났다. 그녀는 일본어밖에 할 줄 모르는 일본 거주자였지만, 제도는 18년 동안 그녀를 ‘가방면(假放免: 난민 신청자나 강제퇴거 대상 외국인을 법적 지위는 주지 않은 채, 구금만 일시적으로 풀어주는 제도)' 상태로 분류했다. 이는 합법적 체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농구를 누구보다 좋아하는 A양은 코트 위에서 땀 흘리며 친구들과 부대끼는 것을 즐기는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가방면이라는 족쇄는 그녀가 코트 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타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입국관리국의 허가가 필요했기에, 친구들이 들뜬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떠나거나 농구부 원정 경기를 하러 갈 때, 그녀는 홀로 도쿄에 남아야 했다. 함께 땀 흘린 동료들과의 추억에서 배제되는 순간, 외향적인 그녀가 마주해야 했던 것은 텅 빈 코트 같은 적막함과 소외감이었다.
더욱 견디기 힘들었던 건 이 고립을 스스로 감내해야 했다는 점이다. 1% 미만의 난민 인정률과 거리에서 들려오는 혐오 발언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가방면’ 상태임을 친구들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했다. 친구들과 웃으며 이야기하다가도, ‘나는 너희와 다른 존재’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보이지 않는 벽 뒤로 숨어야 했던 시간들이다. 최근 체류 자격을 취득한 A양은 이제 간호사를 목표로 공부 중이다. 의료보험이 없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참아야 했던 서러움이, 역설적으로 그녀를 치유의 길로 이끌었다. 자신을 외면하고 고립시켰던 사회와 국가를 향해, 도리어 “가장 먼저 아픈 사람을 돌보겠다”고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A양의 사례는 낡은 제도가 한 청년의 평범한 일상을 어떻게 갉아먹는지, 그리고 그 고립을 뚫고 나온 의지가 우리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지 보여준다.
신주쿠 가부키초
‘안전한 어른’의 부재
도쿄 최대의 유흥가, 욕망이 끓어오르는 신주쿠 가부키초. 관광객들의 웃음소리와 호객꾼들의 고함이 뒤섞인 메인 스트리트의 화려함 뒤편에는, 갈 곳 잃은 여성들이 그림자처럼 서성이고 있었다.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여성 지원 단체 ‘콜라보(Colabo)’는 위태로운 아이들을 지키는 마지막 방파제처럼 서 있었다. 현장 상담 기록이 말해주는 진실은 참혹했다. 이들을 거리로 내몬 것은 철없는 호기심이 아닌 생존 본능이었다. 가정폭력과 학대를 피해 뛰쳐나온 이들에게 거리는 ‘가출(家出)’의 해방구가 아닌 처절한 ‘탈출(脫出)’의 전쟁터였다. 가장 뼈아픈 현실은 학교나 가정, 그 어디에도 “살려달라”고 외쳤을 때 손잡아 줄 ‘안전한 어른’이 전무하다는 점이었다.
그 빈자리를 파고드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포식자들이었다. “잘 곳과 용돈을 주겠다”며 다가오는 성착취 업소 스카우트나 범죄 조직의 ‘검은 친절’은, 고립된 아이들에게 유일한 구원처럼 비치기도 한다. 고립은 아이들의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그렇게 학대받은 아이들은 또 다른 착취의 굴레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간다.
콜라보의 활동은 같은 자리에서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여기 너를 해치지 않는 어른이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는 과정이었다. 행정 서류는 펜으로 쓰지만, 그 펜을 들게 하는 힘은 사람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다. 지원이란 차가운 제도가 닿기 전,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관계 맺기임을 가부키초의 밤은 웅변하고 있었다.
▲여성 지원 단체 ‘콜라보(Colabo)’가 도쿄 유흥가의 문제에 대해 발표했다. (사진=김형렬 씨 제공)
‘지원’을 넘어 ‘연결’과 ‘회복’으로
이번 4박 5일간의 교류 활동을 통해 우리가 뼈저리게 확인한 사실이 있다. 현대의 청년 빈곤 문제는 단순히 ‘돈을 쥐여주면 해결되는’ 1차원적 인과관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빈곤의 기저에는 ‘고립’과 ‘멘탈 붕괴’라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훨씬 더 치명적인 메커니즘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문제에 대한 진단이 단순하면 그 처방 또한 겉돌 수밖에 없다. 청년들에게 “노력해라”, “지원금 줄 테니 나와라”라고 말하는 것은 공허한 외침이다. 오늘날 청년 빈곤이 주거 불안정, 사회적 고립, 교육 격차, 그리고 불안정한 노동이 복잡하게 얽힌 ‘악순환의 고리’로 재정의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는 시혜적 ‘지원’을 넘어, 끊어진 관계를 다시 잇는 ‘연결’과, 무너진 삶의 의지를 다시 세우는 ‘회복’을 이야기할 때다. 아스포트가 닫힌 문을 두드리고, A양이 간호사가 되어 타인을 돌보려 하고, 콜라보가 거리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사회가 이들의 외로운 문을 두드려줄 ‘안전한 이웃’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도쿄에서 얻은, 그리고 한국 사회에 던지는 해답이다.
김지현(환경조경디자인학 2024)
김형렬(행정학 2021)
윤테레사(사회학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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