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흑백요리사 이준 셰프, 미슐랭 2스타에 이르기까지··· “좋아하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는 바보같이 뛰어들어야”
# ‘흑백요리사 시즌2’에 백수저로 출연한 이준(조리과학 2002) 셰프는 업계에서 가장 과감하고 혁신적인 셰프로 꼽힌다. 매 시즌 새로운 주제(에피소드)로 코스 요리를 구성하는 독창적인 방식을 고수하며 미슐랭 2스타를 획득했다.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스와니예’에서 만난 이준 셰프에게 대학 시절부터 미국 유학 생활,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물었다. 요리에 대한 철학과 태도가 모두 그 안에서 비롯됐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2011년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이준 셰프는 <내 코끼리만한 희망>이라는 저서에서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열정 500g+욕망 200g+노력 500g+감성 100g +이성 200g +무모함 50g+진심 100g+행운 2큰술 +시련 2작은술 +역마살 1/2컵 = 이준”.
푸드페스티벌, 홈파티 경험 등
지금의 이준을 만들어준 대학시절
어렸을 때부터 무엇이든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이준 셰프에게 요리란 상상력과 도전 정신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요리사라는 확고한 꿈을 안고 2002년 조리과학과에 진학했다. “당시엔 책 말고는 요리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는 이준은 중앙도서관에 있는 요리책을 전부 섭렵할 정도로 몰두했다.
조리과 학생들이 꼽는 1년 중 하이라이트는 단연 푸드페스티벌 기간이다. 이준은 행사 준비를 위해 조리 실습실에서 한 달간 메뉴를 준비했던 과정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주방팀장을 맡아 2박 3일간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작게나마 창업을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 동기이자 당시 다이닝팀장이었던 류시형(조리과학 2002) 씨는 “준이가 팀장을 맡으면서 한식·일식·양식 세 코스로 나뉘어 있던 기존 방식을 없애고, 16가지 메뉴 중 에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4코스를 고르는 커스터마이즈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이어 “각 소모임이 알아서 코스를 꾸리던 때는 주방 인원이 60~70명에 달했는데, 이걸 20명 규모의 하나의 주방팀으로 만든 것”이라며 “내부에서는 엄청난 혁신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돌아봤다.
이준은 친구들과 스터디 모임을 만들어 해외 원서를 공부했고 지칠 때까지 토론했다. 주말마다 주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현장을 알아갔고, 부암동 ‘아트포라이프’에서 일하던 중에는 셰프와 함께 만든 메뉴가 실제 손님에게 나가는 기쁨도 맛봤다. 중식 요리에 흠뻑 빠졌을 때는 외부 수업을 듣고자 교양으로만 20학점을 채우는 패기도 부렸다. 책을 보다 만들어보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친구들을 불러 ‘홈파티’를 열었는데, 에피타이저부터 메인 요리, 후식까지 총 15가지 코스를 테이블에 올리기도 했다. 주제 선정부터 메뉴 작업까지 단순히 하루 먹고 노는 파티라고 하기엔 진중한 태도였다.
후배 김영래(조리과학 2006) 씨는 “실력도 좋았지만 꿈을 찾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그 노력을 똑똑하게 하는 모습이 남달랐다”고 회상했다.
이준은 “그때의 경험들이 당장 커리어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것 같다”고 말했다.
목표는 ‘퍼세’의 식구가 되는 것
별명이 된 ‘스와니예(완성도가 높은)’
졸업 후 뉴욕행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중앙도서관에서 읽은 토마스 켈러의 『프렌치 런드리 쿡북』이었다. 켈러의 요리 철학에 깊이 공감한 이준은 ‘그의 완벽한 주방에서, 완벽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꿈꿨다. 그 책을 두고 “저한테 있어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세계 3대 요리학교로 꼽히는 미국 CIA에 입학한 날, 이준은 짐을 풀자마자 레스토랑 ‘퍼세(Per Se)’로 향했다. 그는 “능력이 부족하면 그 아래로 들어가서 시키는 것을 잘 해 내고, 증명해 내면 또 더 높은 기술을 배울 찬스가 온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무보수로 경험을 쌓는 ‘스타지(stage)’ 문화 속에서 연습생으로 퍼세의 주방에 합류했다.
평일에는 CIA에서 수업을 듣고, 주말에는 퍼세에서 일하는 이중생활이 이어졌다. 기차로 2시간 거리를 매번 오가면서도 “젊었기에 체력은 문제가 되지 않았고 그저 너무 기뻤다”고 회상했다. 현장에서 배운 것은 학교에서 연습하고, 학교에서 익힌 이론은 다시 현장에서 적용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실력은 쌓여갔다. 이준은 “그 매장에서 주말에 일을 하게끔 받아준 사례가 이전에는 없었다”며 “퍼세에서 배운 것을 궁금해하는 친구들에게는 알려주기도 하며 재밌게 학교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이 시기 이준의 별명은 ‘스와니예(Soigné)’. ‘완성도가 높은’ 혹은 ‘잘 만들어진’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다. 이러한 태도는 연습생이었던 이준을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링컨’의 정식 멤버로 만들었다. 이준은 “정식 취업을 해야 할 상황이 왔을 때 퍼세에서 같이 일했던 헤드 셰프가 ‘링컨’이라는 신규 레스토랑을 오픈했다”며 “오픈 멤버를 제안받아 함께 넘어갔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뉴욕에서도 이준은 자신만의 한자리를 잡고 일어섰다.
2011년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이준 셰프는 <내 코끼리만한 희망>이라는 저서에서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열정 500g+욕망 200g+노력 500g+감성 100g +이성 200g +무모함 50g+진심 100g+행운 2큰술 +시련 2작은술 +역마살 1/2컵 = 이준”.

▲평일에는 CIA에서 수업을 듣고, 주말에는 퍼세에서 일하는 이중생활이 이어졌다. 기차로 2시간 거리를 매번 오가면서도 “체력은 젊었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고 그저 너무 기뻤다”고 회상했다. (사진=천유정 기자)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
“바보같이 뛰어들어야 해”
그동안의 배움과 경험을 토대로 이준은 2013년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스와니예’를 오픈했다. 매 시즌 스토리텔링이 담긴 ‘에피소드’ 형식의 메뉴로 주목받으며 2017년 미슐랭 1스타를 획득했고, 2023년부터는 2스타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국내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은 단 8곳 뿐이다. 미쉐린 가이드는 스와니예를 향해 “고유한 주제의 각 에피소드는 마치 기승전결이 있는 한 편의 시를 감상하는 듯하다”고 평했다.
스와니예의 현재 운영 방식에 대해서는 “초반 형태보다는 훨씬 간소해졌다”고 설명했다. 정기적인 창작이 오히려 창의성을 제약할 수 있다는 고민이 들면서, 초창기의 복잡한 형태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방식’을 택하게 됐다. 현재도 3~4개월 주기로 메뉴를 교체하고 있지만,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구성하기보다는 의미 있는 아홉 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보다 유연한 창작을 이어가고 있다. 이준은 “스토리텔링에 공감하던 분들에겐 다소 아쉬울 수 있겠지만, 음식 자체만 놓고 보면 훨씬 안정감이 좋아졌다”고 전했다.
과 후배이자 ‘재인’의 오너 셰프인 이재인 동문(조리과학 06)은 이준의 행보를 두고 “일반적인 외식업 경영은 고객이 원하는 니즈를 충족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오너 셰프는 자신이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고객의 니즈와 어떻게 어우러지게 만드느냐가 포인트”인데 “바로 그런 지점을 잘 해내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길을 계산해 가장 최적화된 방향으로만 향했다면, 이준은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확신을 가지고, 마음껏 부딪혀보는 그 모든 과정을 소중히 여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이준은 “세상은 계산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순수한 사람들이 결국 성공하는 것 같다”며 “시행착오를 겪다 나중에 내가 좋아하는 걸 알아도, 그 순간부터는 진짜 바보같이 뛰어들어야 된다”는 말을 남겼다.
“계속 삐딱하게 가되, 결승까지는 직선으로 제대로 갔으면 좋겠어요.” 흑백요리사 시즌2에서 자신의 제자였던 ‘삐딱한 천재’에게 남긴 이 말은, 이준 또한 그런 길을 걸어왔기에 가능한 조언이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이준은 “세상은 계산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순수한 사람들이 결국 성공하는 것 같다”며 “시행착오를 겪다 나중에 내가 좋아하는 걸 알아도, 그 순간부터는 진짜 바보같이 뛰어들어야 된다”는 말을 남겼다. (사진=천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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