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24년 만에 다시 1학년··· 왕은경 씨의 세 번째 ‘학생’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작가를 꿈꿔”
회화과 1학년 왕은경(회화 2001) 씨
# 우리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 특별한 1학년이 입학했다. 2001학년도 회화과로 처음 입학한 뒤, 2007년 재입학을 했고, 2025년에 다시 한번 재입학을 통해 우리학교로 돌아온 만학도 왕은경(회화 2001, 만 52세) 씨다. 자퇴와 재입학, 일본에서의 오랜 생활, 병환과 코로나를 넘어 다시 우리학교로 돌아온 왕 씨는 “이 번에는 꼭 졸업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다시 이젤 앞에 앉았다. 24년 만에 회화과로 돌아온 만학도 왕 씨를 만나 그간의 삶의 여정과 우리학교에서의 생활에 대해 물었다.
마지막 ‘재입학 기회’
세 번째 시작을 선택하다
첫 대학 생활은 1993년 단국대학교 도예학과에서였다. 복식디자인을 전공하고 싶었던 왕 씨는 자퇴 후 다시 수능을 준비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고 진로를 고민하며 다양한 일을 경험하게 됐다. 친구가 운영하던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해, 약 2년 반 정도 강사 생활을 이어갔다. 강사 일 외에도 꽃집과 종로의 액세서리점 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생업과 진로 사이에서 방향을 고민했다. 그러던 중 당시 우리학교 특차전형에 응시해 2001년 회화과에 입학하게 됐다.
하지만 첫 입학은 오래가지 못했다. 전공과 향후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서 학업 방향을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왕 씨는 “나이가 들어 공부를 다시 하니 너무 간절해졌다”며 “그만큼 내 선택이 맞는지 계속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고민이 깊어지면서 잠시 학업에서 한발 물러나기로 했고, “머리를 식히고 싶어 일본으로 잠시 어학연수를 떠났다가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결혼을 앞두고 한국으로 돌아와 2007년 우리학교에 재입학해 학업을 이어가려 했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남편의 직장 문제와 시댁의 반대 등 현실의 벽 앞에서 학업을 지속하기는 어려웠고, 결국 학업을 다시 내려놓아야 했다. 이후 남편이 일본에서 직장을 잡게 되면서, 두 사람은 일본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왕 씨가 다시 도전할 용기를 낸 건 코로나 시기였다. 왕 씨는 “몸이 아파 약만 먹고 하루 종일 앉아 있는 날들이 반복됐다”며 “그런 시간 을 보내다 보니 문득 ‘공부를 다시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전했다. 재입학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과거 기록이 ‘미등록 제적’ 이었기 때문에 마침 재입학 기회가 한 번 남아 있었다. 왕 씨는 “주변에 재입학 이야기를 꺼냈을 때 단 한 명도 반대하지 않았다”며 “다들 응원해 줘서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그렇게 모두의 지지를 등에 업고 왕 씨는 다시 우리학교 문을 두드렸다.

▲ 왕 씨는 “멋있어 보이는 전시보다 마음이 움직이는 전시가 더 좋다”며 “내 그림을 보고 한 사람이라도 행복해지거나, 우울했던 마음이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그게 제가 하고 싶은 작업이다”고 말했다. (사진=홍지우 기자)
배움의 기초부터
다시 쌓아 올린 첫 학기
그렇게 다시 입학한 첫 학기, 왕 씨는 학업 우수자로 선정됐다.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온라인으로 옮겨간 수강신청 시스템을 잘못 이해해 의상학과 전공 필수인 ‘복식사’를 신청한 것이 발단이었다. 당시 담당 교수는 “미대 학생이 이 수업을 듣는 건 처음”이라고 했고, 왕 씨는 그 말에 “내가 이 수업을 듣는 첫 미대생이라 더 잘하고 싶었다”고 했다. 방대한 양을 모두 외워야 하는 강의였지만, 왕 씨는 “시험 전날까지 달달 외우며 버텼다”고 설명했다.
만학도의 꾸준함은 곧 성적으로 드러났다. 왕 씨는 “화려하게 꾸미기보다 경험과 진심을 담아 과제를 했다”며 “교수님들이 그런 진심을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선 사례처럼, 디지털 환경은 또 다른 벽이었다. 왕 씨는 “전자출결에 이캠퍼스까지 첫 주는 완전히 멘붕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발표 자료도 직접 제작하는 등 “예전보다 정말 많이 나아졌다”고 덧붙였다.
오랜 공백에서 비롯된 실력 차이가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왕 씨는 “예고 출신 친구들은 5~7년씩 그림을 해온 친구들인데 나는 귀 하나 그리는 데도 4시간씩 걸렸다” 며 “너무 안 그려져서 눈물이 날 때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교수님들이 지적을 하면 금방 고친다고 하셨다”며 “아무래도 하얀 도화지처럼 처음부터 배우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학기 왕 씨를 지도한 허수영(조형예술학) 교수도 이러한 성실함을 기억하고 있었다. 허 교수는 “마음에 들 때까지 같은 그림을 여러 번 다시 그리던 모습이 생각난다”며 “결과의 아름다움은 캔버스에 남았고 노력의 아름다움은 기억 속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재입학 후 동기들과의 관계는 큰 힘이 됐다. 왕 씨는 “학생들이 너무 착하고 예뻐서 좋은 에너지를 받는 느낌”이라며 “나이가 많아 눈치가 보일 때도 있지만, 학교에 다시 오면서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동기 김태은(회화 2025) 씨는 “인생의 선배로서 다양한 조언을 해주시고, 또래 친구들과는 다른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 주시는 분”이라고 전했다.
예술로 이어가는 새로운 목표
“이번엔 꼭 졸업하고 싶다”
현재 왕 씨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자화상을 작업하고 있다. 왕 씨는 “여러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고 생각해 왔는데, 요즘에는 내가 아예 가면이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지낼 때는 공항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입에 달고 살아야 했던 ‘스미마셍’이라는 말이 사회적 규범을 강요하는 일종의 가면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왕 씨는 이러한 경험을 가부키 가면 이미지로 형상화해 자신의 모습에 투영했다. 왕 씨는 “그동안의 삶을 솔직하게 마주한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
왕 씨가 다시 예술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왕 씨는 “멋있어 보이는 전시보다 마음이 움직이는 전시가 더 좋다”며 “내 그림을 보고 한 사람이라도 행복해지거나, 우울했던 마음이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그게 제가 하고 싶은 작업이다”고 말했다. 왕 씨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작가’를 꿈꾸고 있다.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서는 “이번에는 꼭 졸업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졸업 후에는 일본 도쿄 조형예술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다시 공부를 고민하는 학우들에게도 메시지를 전했다. 왕 씨는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할 수 있다”며 “인생은 한 길만 있는 게 아니고, 선택하지 않은 길을 가도 또 다른 길이 보인다” 고 조언했다. 스물 네 해를 돌아 다시 1학년이 된 왕은경 씨는, 이제 하얀 캔버스 위에 세 번째 청춘을 천천히 그려가고 있다.
이은서 기자 silverwest2002@khu.ac.kr
홍지우 기자 lindsey1111@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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