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특별기획]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후마의 15년 묵은 논쟁 상대·절대평가 넘어 교육철학에 맞는 기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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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출범한 후마니타스칼리지(후마)는 “한국을 대표하는 교양교육 모델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구성원의 자부심으로 자리잡았다. 우리신문은 15년이 흐른 지금, 교양교육의 전범(典範:본보기가 될 만한 모범)으로 불리던 후마가 설립 당시의 철학과 역할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지 되짚고자 한다. 이번 2부 3회차에선 학생들이 후마 교육의 꾸준한 문제점으로 지적한 ‘평가방식’을 다룬다.
경쟁 중심의 ‘상대평가’ 체제
후마 철학에 걸맞는 평가방식 필요
후마가 출범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교양교육의 평가방식을 둘러싼 논의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몇몇 교과목을 제외하면 상대평가로 점수를 매기는 지금의 후마에선 옆자리 학우를 제쳐야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중 어떤 방식이 후마의 교육철학에 부합하는지를 두고 양 캠퍼스의 입장이 엇갈려왔다. 서울캠을 중심으로 절대평가 전환 요구가 꾸준히 제기됐지만, 국제캠과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며 논의는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
2011년 7월, 후마 설립위원이자 ‘시민교육’ 주임교수였던 우기동 교수는 시민교육의 절대평가 유지를 결정하며 “상대평가를 하게 되면 현장활동이 일종의 실기평가가 되기 때문에 교과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절대평가제를 택했다”고 말했다. 2012년 5월엔 양캠 글쓰기 교과의 평가방식이 달라 논의가 이뤄졌다. 당시 김동건 PD교수는 “글쓰기 교과 교육 목표는 학생의 자아성찰이기 때문에 절대평가가 적합하다”며 “특히 학생들이 서로 자신의 글에 평가하는 ‘합평’은 경쟁원리를 통해서는 그 취지를 살리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렇듯 교수들은 지향점에 맞는 교육이 이뤄지기 위해선 그에 맞는 평가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후마는 교육 지향점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 대학에서 자유롭고 창조적인 탐구활동과 정신 가꾸기를 지속할 수 있게 하는 교육’, ‘계층과 신분, 종교, 지역 등이 벽을 넘어 타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이해하는 능력’, ‘선의’와 배려와 공감의 공동체적 가치들을 체득하게 하고 사회봉사의 정신을 길러주는 교육’ 등을 명시하고 있다. 우리학교 교양교육은 시험을 잘 보는 것보다 사유의 깊이를 키우는 데 집중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교양교육의 최종 목표를 두고 “교양은 한두 해의 학점을 따는 것으로 달성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학점 앞에서 학생들은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상대평가 체제에선 더욱 그렇다. “장단점이 있지만 상대평가는 내가 아무리 잘하더라도 모두가 경쟁자라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김아현(일본어학 2023) 씨의 말처럼 A학점을 받을 수 있는 학생의 비율이 정해져 있는 상대평가 체제에선 모두가 경쟁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다.
반복된 평가방식 전환 논쟁
양캠 의견차로 15년째 ‘답보’
후마의 평가방식을 둘러싼 논쟁은 설립 초기부터 존재했다. 본격적으로 후마가 학생들을 만나기 1년 전부터 우려가 있었다. 2010년 후마 대학생위원회 김기웅(지리학 2004) 위원장은 당시 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상대평가보다 절대평가를 선호하며, 학점제도보다 ‘Pass/Fail’ 제도를 도입하는 등 다양한 평가방식 도입을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학생들의 경쟁을 유도하는 평가보다는 교양교육의 취지에 맞는 평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2012년 총학 선거 땐 ‘교양 절대평가제 전면도입’ 공약을 내세운 후보도 있었다.
평가방식에 대한 양캠의 이견도 일찍부터 나타났다. 2012년 5월, 서울캠은 글쓰기 중핵교과를 절대평가로 확정했지만 국제캠은 글쓰기 상대평가를 유지했다. 같은 학교, 같은 과목이지만 양캠 학생들이 다른 방식으로 평가받게 됐던 것이다. 2013년엔 중핵교과의 절대평가 전환을 주제로 중핵교과 운영위원회 교수 5명, 학생회 대표 5명의 공개토론회가 열렸다. 학생대표는 “학생 모두의 노력이 평가될 수 있기 위해선 절대평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수진은 “절대평가 전환으로 경쟁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건 무리”라고 반박했다.
4년이 지난 2017년, ‘후마 재도약을 위한 학생의견수렴 공청회’에선 이준태 교수가 “줄세우기는 후마 가치에 부합하지 않아 절대평가와 Pass/Fail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23년 서울캠 총학의 교양 만족도 조사에서도 학생들은 상대평가보다 절대평가를 선호했지만, 변한 건 없었다. 평가방식에 대한 논의가 일회성 문제에 그치지 않았던 셈이다.
여전히 대다수 과목이 상대평가
줄 세우기에 답답한 학생들
지속적인 논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후마 교양과목은 일부 중핵교과를 제외하면 상대평가를 기본으로 운영되고 있다. 학칙상 학부 성적평가는 상대평가를 원칙으로 하며 일부 강좌에 한해 상대평가가 적용되지 않는다.
지난 1학기 우리신문의 설문조사와 인터뷰에서 여전히 학생들은 56.2%가 ‘후마와 같이 토론·글쓰기·성찰·실천을 지향하는 수업에 상대평가가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다. 학생들은 “상대평가는 제한된 비율 때문에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때가 있어 학습 의욕을 꺾는다”고 입을 모았다.
또 “교양은 경쟁보다 각자가 얼마나 생각하고 표현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는 의견도 있었다. 학생들이 느낀 불편함은 설립 초기 후마의 정체성을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결과다.
현재의 평가체제에선 단순한 지식 암기가 아닌 자신의 사고를 기르는 ‘지평융합의 원칙’, 문제의 원인을 탐구하는 ‘문제탐색의 원칙’이 포함된 후마 교과조직의 6대 원칙에 반하는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 후마 수업에서는 결과보다 학생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경우도 있다. 이 같은 수업에서 일정 비율의 학생을 A학점으로 제한하는 상대평가를 적용할 경우, 교육과정의 본래 목적과 무관한 평가 기준이 추가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생들이 모여 하모니를 이루는 예술 교과에서도 상대평가가 이뤄진다. 2023학년도에 ‘합창의 재발견’을 수강했던 고나현(정치외교학 2021) 씨는 “모두의 학점을 아는 건 아니지만 함께 열심히 준비해서 같은 노래를 불렀던 팀원끼리 서로 학점이 달라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절대평가’ 공감대는 있지만
섣부른 도입 안 된다는 주장도
절대평가를 바라는 서울캠 후마 김진해 부학장은 “상대평가가 필요할 때가 있지만, 그건 학생을 선발할 때”라며 “대학 교육 영역에선 상대평가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사실 교육학에서 의미하는 절대평가는 학생들이 설정된 교육 목표나 기준에 얼마나 도달했는지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 대학에서 보통 생각하는 절대평가와 달리 학점 자체가 없다. 절대평가의 학술적 의미부터 짚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도 받았다는 김 부학장은 “그걸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우리가 보통 쓰고 있는 개념을 기준으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밝혔다.
서울캠에서 글쓰기 교과를 가르치는 고인환 교수 역시 교양교육은 절대평가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 교수는 “학점 인플레이션과 강의의 질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있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것보다는 교육의 목적에 맞게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문제점이 생기면 보완하는 방식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섣부른 절대평가 도입은 안 된다는 입장의 국제캠 후마 학장을 지냈던 김성수 교무처장은 학점 인플레이션을 걱정한다. 특히 비전임 교원은 학생들의 강의평가가 중요하기 때문에 절대평가 시행 시, 후한 학점을 주는 경향이 높다. 그런 흐름에서 받은 높은 학점은 크게 의미가 없다는 설명이다. 김 교무처장은 “평가가 의미 없어지면 학생의 수업 태도는 좋지 않아진다”며 “제대로 된 수업 운영을 위해서라도 평가는 객관화가 되는 비슷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캠 과학교과 김성 PD교수는 “코로나19 시절의 절대평가는 학점별 성취해야 하는 구체적인 기준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절대평가가 아니고, 학점 인플레이션도 있었다”며 “방향은 절대평가로 가야 한다는 건 많은 분들이 공감하지만 확실한 기준안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서울캠에서 ‘인간의가치탐색’을 가르치는 고봉준 교수는 “상대평가에 동의하지 않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절대평가와 Pass/Fail제도 역시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명확한 답을 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강의평가 점수로 교수에게 불이익을 주는 제도부터 없애야 평가방식에 대한 논의가 지금처럼 이상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인환 교수 역시 “시간 강사들은 강의평가 점수가 낮으면 잘리기 때문에 학점을 잘 주게 되고, 수업의 질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대안 ‘역량평가’
주입식 강의 문제는 우려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외에 꾸준히 언급되는 것이 역량평가다. 역량평가는 학업성취도, 학업태도, 탐구력 등 교과목에서 요구하는 학습 능력을 학생이 갖췄는지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이다. 학기 동안 중간고사, 기말고사 때만 학생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교수가 지속적으로 학생 개개인의 역량을 기록하면서 평가하게 된다. “차라리 역량평가가 낫지 않겠냐”는 국제캠 김 교무처장은 “그동안 역량평가를 못했던 이유는 기업에서 학생의 역량에 대한 평가를 읽는 것보다 숫자로 나오는 학점만 봤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는 과목마다 구체적인 역량평가를 기술해두면 AI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론 역량평가가 옳긴 하다”고 덧붙였다.
서울캠 후마 김 부학장은 “역량평가가 좋지만 당장 구현할 수 있는 시스템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역량평가야말로 확실한 준비가 뒷받침돼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역량평가는 교양이 아닌 전공에서 해야 하는 방식이라고 꼬집었다. 학과별 인재상은 명확하지만 교양은 전공에 비해 덜 명확하기 때문이다. 김 교무처장은 “역량평가 역시 교양교육 교과목이 많은 우리학교 환경에선 어렵다”며 마찬가지로 역량평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봤다.
교수의 일방적 강의가 주가 되는 현재 후마 대부분의 강의법 역시 역량평가에 부합하지 않는다. 교수 혼자서 많은 수의 학생을 상대하고 있는 현재 구조에선 현실적으로 학생의 역량을 정확히 파악해 평가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우리신문의 설문조사에서 2학년 이상 재학생들 중 ‘후마 수업의 문제점으로 교수·과목별 편차가 크다’고 답한 응답자가 65.2%였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역량평가를 시행한들 성적의 객관성을 보장하긴 어렵다.
근본적인 문제는 양캠 후마 갈등
이분법적 사고 벗어난 ‘소통’ 절실
현실적으로 역량평가 도입은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캠에선 후마의 교육철학과 교양수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절대평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반면 국제캠에선 평가방식의 변화가 실제 수업을 담당하는 교수와 학생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하며, 캠퍼스 간 충분한 논의와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결국 절대평가 도입 여부만으로 논의를 끝낼 수 없다. 후마가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교육의 성취를 어떤 방식으로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공동의 합의가 먼저 필요하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이 같은 논의가 15년 동안 반복됐음에도 양캠이 하나의 결론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데 있다.
후마의 평가방식 논쟁은 결국 후마가 어떤 교육공동체를 지향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간다. 상대평가냐 절대평가냐는 결과적으로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양 캠퍼스가 후마의 교육철학을 공유하고, 그 철학을 실제 교육과 평가에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함께 결정하는 과정이다. 나아가 지금의 논쟁은 상대평가와 절대평가만을 비교하는 이분법적인 구조다. 다만 평가방식을 둘러싼 갈등의 핵심은 단순히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가운데 어느 한쪽이 더 우월한가에 있지 않다. 더 넓은 시각에서 다양한 선택지를 두고 어떤 교육을 할 것인지에 대해 양캠이 소통해야 한다.
15년 동안 해결되지 않은 평가방식 논의는 후마 내부의 ‘소통과 거버넌스’ 문제를 드러내는 하나의 사례이기도 하다. 평가방식에 대한 양캠의 이견이 왜 15년이 지나면서도 좁혀지지 않았는지, 후마의 주요 정책은 어떤 구조에서 결정되고 있는지는 다음 회차에서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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