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나를 구성하는 기억에 대하여… 목련칼리지 초청강연 '나를 사랑하기 위한 기억과 망각'

▲ 손 작가는 "자신의 지우고 싶은 기억을 안고 살아가며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는 데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오채원 기자)
# 기억과 망각은 결국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여정이다. 실천교육센터는 동시대 청년 문제를 소설 작품을 통해 조명하는 ‘목련칼리지 초청강연: 경희가 낳은 우리 시대의 소설가’ 특강을 3회에 걸쳐 진행했다. 지난달 28일 열린 세 번째이자 마지막 강연에선 손보미(국어국문학 1999) 작가가 ‘나를 사랑하기 위한 기억과 망각’ 을 주제로 기억이 어떻게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고, 또 우리를 살게 하는지를 이야기했다.
【서울】 “어떤 기억을 없애고 싶어?” 손보미 작가의 소설 『세이프 시티』는 이 질문으로 시작해 자신을 구성하는 기억이 곧 자신임을 인정하는 용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강연은 청운관에서 국어국문학과 선후배 사이인 손 작가와 박은지(국어국문학 2004) 시인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박 시인의 진행 속에 두 사람은 소설의 모티브부터 창작 비하인드까지 깊이 있는 대화를 이어갔다. 소설은 손 작가가 꾼 꿈에서 시작됐다. 손 작가는 “밤에 어떤 건물에 갔는데 여성들이 있었고, 누군가 화장실 문을 부수고 있었다”며 “이걸 소설로 쓰면 재밌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손 작가는 단기기억 상실 환자가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화증’을 소개하며 “우리의 정체성은 기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우고 싶은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데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며 “그 기억이 나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 감각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책의 배경에 대한 이야기는 작가가 타이베이 미술관에서 겪은 VR 체험으로 이어졌다. 도시 개발로 철거된 아버지의 공장을 VR로 재현한 어느 예술가의 작품이었다. 손 작가는 “공장 잔해로 탑을 쌓고 우주로 날아오르는 체험을 하다 뒤를 돌아보니, 구멍 너머로 잔해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며 “그 순간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고 말했다. 손 작가는 “어떤 것들은 사라지지만 사라지지 않고, 사라지지 않지만 사라지는구나 싶었다”며 “내가 잊더라도 내 뒤에 언제나 남아있는 게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됐다”고 전했다. 이어 “예술이 반드시 현실의 가혹함만을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고 덧붙였다.
손 작가는 최근 2주간 원고지 30매밖에 쓰지 못했다며 창작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어 글을 쓰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너의 소설은 네가 아니야”라는 메시지를 건넸다. 자신의 작품에 혹평을 들어도 그것이 곧 자신의 가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손 작가는 “소설 한 편 한 편을 완성이라고 여기는 게 아니라, 마지막 소설을 향한 하나의 퀘스트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참여자들은 강연에 호평을 남겼다. 박무현(철학 2021) 씨는 “소설을 읽으며 가졌던 의문점을 직접 쓴 사람의 입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게 흔치 않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김예서(한약학 2026) 씨는 “현재는 연결이 많아진 시대이지만 깊은 연결은 오히려 부족해졌다”며 “이런 북토크가 깊은 연결의 매개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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